2017/08/26 18:26

하루 반나절 일기 이야기

'이틀' 간 일기를 '하루 반나절'로 고친다. 아직 하루가 남아있으니까.  
지금 쓰고 있는 걸 일기라고 하면 약간 죄짓는 기분이다. 
방학숙제가 주장하는 매일의 형식을 갖춘 일기는 거의 쓰지 않았다. 방학이 시작되고, 바른 생활을 다짐한 며칠 동안 오늘 일어난 일을 일기장에 쓸 때, 마음에 들지 않는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처럼 연필을 세게 눌러가며 다 쓰기도 전에 빈 줄이 채워졌으면 했다.
 
<매일 쓰는 일상의 기록>이 일기의 조건이라면, 어떤 하루의 한 순간 독백으로 지나간 문장을 받아쓰는 행위는 일기가 될 수 있는가? 언뜻 보면 불가능해 보인다. 매일은 충분히(?) 연속적이어야 하고 일상에는 실제로 일어난 오늘의 내용-그 경험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이 아닌 자신의 신체를 벗어난 이야기가 들어설 여지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보자. 일기가 뜻하는 매일의 최소단위가 하루라는 연속체에서 최소 1회 구간이란 사실은 매일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1회보다 더 빈번하다면 더욱 일기의 느낌을 준다. 덧붙여 일상이라는 조건은 문학을 일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충족된다. 자신이 문학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김은 몇 달 동안 기록에 매달린다. 등장인물이나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어떤 일에 연루되었고, 어떤 상념에 빠져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김에게는 일상이며, 밥을 먹거나 대소변을 가리는 일보다 더 현실적이다. 김에게는 그 기록이 일기가 된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기록은 일기의 정의를 바꾸지 않는 한 일기가 된다. 여기서는 문장이 지시하는 행위의 주체나 주어가 '내가 아닌' 일기가 가능하다.  


그러니 이제 마음놓고 하루 반나절 일기를 쓰자.

어제는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자고 생각했다. 
보고 싶었던 영화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
두 영화 사이에서 저녁 시간이 걸리지 않는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엔딩 크레딧이 끝나기 전에 일어서기 어려운 영화관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영화는 내게 닿지 않았다.  
'리얼'을 강조한 영화였는데 뒤로 갈수록 '리얼'이 사라졌다. 배우들이 연예인같아 보였다. 무명 배우는 억지 연기자같아 보였다. 그래서 <더 테이블>도 '리얼'도, '까페'도, '커피'도 사라졌다.  

영화관에 들어설 때부터 목이 마른 상태였다. 건조하고 상쾌한 가을볕이 내 남은 물기를 증발시켰다. 눈이 부셨고, 뻑뻑했다. 
1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ㅅ역까지 걸었다. 뭐라도 마시고 싶었지만 위에 해로울까봐, 또 걸음을 멈추기 싫어서, 볕에 바람에 바싹 말라가며 걸었다. 역에 도착해 서점과 잘 꾸며놓은 상점가가 있는 빌딩으로 들어가 식당을 둘러보았다. '그냥 목만 축일까? 지금 저녁을 먹는게 좋을까? 어디서? 자극적이지 않은 가게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사소하고 중요한 생각들을 나는 주로 도시에서, 도시가 벌여놓은 온갖 것들 속에서 고민한다. 그리고 고른 식당에서 9500원짜리 가라아게 고베 카레를 주문하고 내 위를 괴롭히며, 몇 번 씹지 못한 채로 밥을 삼키며, 9500원어치를 후회한다. 시든 가라아게 세 조각, 스무가지 향신료라는 홍보 문구와 달리 합성 매운 맛이 위를 회복하려는 내 노력을 공격하는 카레로 장상피화생세포가 발견된 내 위장에 벌을 준다. 다음에도 또 다시 맛없는 식당에서 만원어치 음식을 주문했을 때 나는 그걸 박차고 나올 수 있을까? 
방법이 있다. 그걸 박차고 나와 롯데리아에서 1000원짜리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자, 그런 다음 집으로 가서 내가 차린 저녁을 먹는 것이다. 나는 9500원보다 저렴하고 정직하며 맛이 좋은 가게를 알고 있다. 그 가게 주인들이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한다면 무슨 말을 할까? '돈 벌기 참 쉽구먼. 알바생 월급도 제대로 안주겠지.' 겉만 번지르르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겉은 점점 썩어들어간다. 썩어가는 채로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빨리 병의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다. 통증과 당기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다. 
시시한 의사는 내시경 전문의이기 때문에 다른 건 아무것도 몰랐다. "웰빙하세요." 이것이 그의 처치였다. 
많은 것을 외우고 실습한 전문의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문장 말고도 더 있을 것이다.
그는 의자에서 빨리 일어나 나가기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자, 뭘 더 원하지? 난 끝났어.' 눈은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이틀 전부터 <섹스 앤 더 시티>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솔직하고 과장된 표현들, 캐리가 자신을 꾸미는 방식, 독백의 형식. 
드라마 이야기를 하려면 하루가 더 필요하다.
드라마는 주로 밥 먹는 시간에 본다. 조용히 혼자 먹으면 위장의 느낌에 사로잡힌다. 드라마는 훼방꾼들을 물리친다. 밥을 먹을 때마다 볼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결코 많지 않다. 일드, 미드, 영드, 쏟아지는 영화들, 유투브, 이렇게 컨텐츠가 많은 시절에도 내게 연속성을 부여하는 이야기는 늘 부족하다. 

하루 반나절 일기라고 했는데 나는 몇 달전에 있었던 일과 이틀 전 일까지 끌어들였다. 
시작할 때의 마음과는 달리 하루 반 나절은 미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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